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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광태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10-03 06:48연락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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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관하는 냉장고 건물서 계절감 잊어
기온뿐 아니라 도시 리듬·감정 바꾼 폭염
‘예전의 여름’ 없는 아이들만 온전히 즐겨
갈증의 계절, 올 여름은 당신의 여름인가
37도를 넘는 한낮이었다.
실내에서 실내로만 이동했다. 차를 타기 위해 걷는 1~2분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사람을 신선하게 ‘보관’해주는 냉장고 건물에서 모두 이 한 철을 보내고 있다. 환기라도 시키려 창문을 열면 뜨거운 공기가 훅 밀치고 들어온다. 여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갈증이 났다. 하천을 따라 난 산책길을 걸었다. 큰 나무들이 성글게 만든 그늘이 드문드문 .을 찍었고, 바람도 제법 불었다. 창 너머로 올려보기만 했던 하늘은 훨씬 높고 파랬고, 토실토실한 구름도 더 풍성했다. 분홍빛, 붉은빛, 연보랏빛 임파첸스 꽃이 사람 없는 거리를 대신했다. 햇살에 살이 익어가는 느낌조차 낯선 평온함으로 다가왔다. 한 달이 넘도록 실내에서만 있다 마주한 이 다채로운 색채와 햇살, 바람과 향기, 살아있는 것들이 전해주는 생기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발밑으로 전해지는 땅을 밟는 느낌, 사각거리는 소리, 냉장고를 빠져나왔다는 이 해방감마저.
그렇게 한 시간을 걷고 땀범벅이 되었는데도 살 것만 같았다. 타들어 가는 갈증에 물 한 모금을 마셨을 때의 안도감, 끼니를 놓친 뒤 허기를 채웠을 때의 그 감각.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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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먹고 온 것 같았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감각의 자리를 잠시 채워놓은 기분 말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여름에 여름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폭염을 전염병처럼 피해 살면서도, 정작 그 여름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견디다 숨이 막힐 때면, 꽃을 사다 화병을 작은 여름으로 만들기도 했다. 창 너머 여름 대신 화병 속 초상화를 붙들고 여름을 느껴보려고도 했다. 유리창 한 장 너머의 거리가 참 멀기도 했다.
우리는 늘 계절을 보낸다고 말한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낸다고. 하지만 계절을 보낸다는 것과 계절을 만난다는 것은 같은 말일까. 계절을 보낸다는 것은 시간의 일이다. 계절을 만난다는 것은 몸의 일이다. 달력 위의 계절과 피부로 느끼는 계절은 다르다.
그날 이후 밤마다 집 앞 공원에 나갔다. 올해 공원은 유난히 조용했다. 지난해만 해도 밤늦도록 농구를 하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올해는 저녁 9시가 되고 10시, 11시가 되어도 사람 하나 없다. 폭염이 사람들을 실내로 밀어 넣어버린 것이다. 낮만큼 표독스럽지 않아도, 사나운 열기에 데인 사람들은 더위를 두려워하는 것도 같다. 폭염이 기온만 바꾼 것이 아니라 도시의 리듬과 사람들의 감정까지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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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면 온도를 낮추려 살수차가 돌아다녀도, 실내로 깊이 숨어버린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낼 수는 없었다. 도시가 더위로부터 사람을 지킨다고 한게, 계절 자체에서 사람을 조금씩 격리해 간 꼴이 돼버렸다.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여름의 무게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 온종일 불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름은 피할 수 없는 견딤의 대상이다. 밭에서, 도로에서, 공사 현장에서 그들은 매일 여름의 그늘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잠시 쉬려고 찾는 그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붙들어야 하는 그늘 말이다. 이 차이만은 외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사람과 피할 수 없는 사람 모두, 여름과 .。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쪽은 피하느라, 한쪽은 호되게 당하느라. 둘 다 여름을 나고 있지만, 여름을 만났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한낮에도 아이들은 그늘이든 뙤약볕이든 가리지 않고 펄펄 끓는 아스팔트에서 뛰어논다. 땀을 분수처럼 쏟아내면서도 마냥 웃고 달린다. 파라솔을 들고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들의 그 일그러진 표정과는 영 딴판으로. 이 아이들에게는 비교할 예전의 여름이 없다.
우리에게는 “예전엔 이렇게 덥지 않았다”라는 기준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지금의 이 인정 없는 뜨거움이 여름의 전부다. 그래서 그 뜨거움은 피해야 할 것도, 견뎌야 할 것도 아니라 여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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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이들이야말로 지금 가장 온전히 여름을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여름을 두려워할 만한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름을 나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그 감각마저 두려워하게 된 것인가.
도시는 오랫동안 계절을 이겨 내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냉방은 더위를 몰아내고, 난방은 추위를 무색하게 했다. 문명의 진보다. 그러나 그 진보는 모두에게 같은 보폭으로 오지 않았다. 도시가 계절을 없앤 것은 아니다. 계절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사람마다 다른 크기로 벌려 놓았을 뿐이다. 더위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일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도시란 사람을 계절로부터 떼어 놓는 곳이 아니라, 잠시라도 두려움 없이 계절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곳이어야 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나서고 싶은 곳. 바람길이 있고, 나무가 만들어 낸 그늘과 물이 있는 곳. 우리가 그리워하는 계절은 여름 속의 다른 계절이 아니라, 우리가 한때 몸으로 알고 누렸던 그 계절이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놓인 화병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안의 여름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싱그럽지만, 갈증이 쉬 가시지는 않는다. 초상일 뿐, 진짜 여름은 아니니까.
그날 단순히 산책을 다녀온 것이 아니었다. 잠시 여름을 먹고 돌아온 것이었다. 허기가 지면 또 나설 것이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몇 번은 더, 두 발로 걸어 볼 참이다.
당신은 이번 여름을 보냈는가. 아니면 만났는가.
그리고 그 여름은, 당신의 여름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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