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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영 시인.
'제2회 늘물섬문학상' 수상자로 정순영 시인(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 선정됐다.
늘물섬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조한일)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전국 공모를 통해 출품된 237편 중 심사를 벌여 정 시인의 '섬을 읽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고 6일 밝혔다.
'섬을 읽다'는 마라도를 한 권의 책으로 바라보는 독창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섬을 '책'으로 비유해 이미지를 집중력 있게 끌고 가는 힘이 돋보인다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이미지와 안정적인 어조, 각 수의 종장이 만들어내는 시적 긴장과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다.
정순영 시인은 2024년 '시조시학'을 통해 등단했고 시집으로 '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 등이 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14일 제주문학관에서 열리는 '제주시조백일장' 시상식에 이어 진행된다. 정 시인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수여된다.
한편 '늘물섬문학상'은 늘물 고성기 시조시인이 제정하고 제주시조시인협회가 주관하는 문학상이다.
▲당선작
'섬을 읽다'
마라도 펼쳐 놓은 책 표지가 시푸르다
바람은 첫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 가고
해안선 접힌 자리에
푸른 낱장 넘어간다
삽화 같은 등대 하나 하늘 끝을 붙들고
해녀의 숨비소리 행간마다 찍혀 있다
물질로 젖은 한 생이
해식애에 밑줄 긋는다
최남단 기념비는 마침표 하나 찍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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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바다는 다음 장을 여는데
끝이라 적은 자리에
첫 문장이 밀려온다
파도에 씻긴 바위 갈비뼈 드러내고
해식동굴 어둠 속에 풍란 한 촉 돋아난다
책장을 모두 덮으면
바다가 나를 읽는다
▲심사평
김일연 심사위원장,
'섬'을 소재로 한 237편의 각기 다른 작품을 읽는 일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숫자로 표기된 무기명의 작품들은 편편이 특별했고 저마다 개성적인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작품들 대부분 기대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긴장하며 작품들을 읽어나갔다.
이 가운데 우리는 시적 대상의 외형만 서술했거나 생경한 시어로 낯설게하기를 실패했거나 제주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작품은 과감히 내려놓기로 했다. 특히, 섬을 소재라고 해서 '외로움', '그리움', '슬픔', '인생'과 같은 추상어를 남발하거나 빛나는 은유 하나 없이 서술에 그친 작품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종장 첫 마디 3음절을 지키지 않은 작품을 보고 당황하기도 했다.
우수한 작품을 한데 펼쳐놓은 가운데 우리는 '살아오름', '고래면옥', '섬을 읽다'라는 작품을 최종 자리에 올렸다.
'살아오름'의 경우 제주 '사라오름'을 배경으로 쓴 작품으로 담담하면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진술이 많았으나 구체적인 정황 없이 추상에 머무른 한계를 보였다. 함께 투고한 두 작품도 이와 동일한 한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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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시조 '고래면옥'의 경우 초장과 종장의 묘사가 좋았으나 사설시조 특유의 입말과 리듬을 살리지 못해 아쉽게 작품을 내려놓게 되었다. '고래면옥'을 쓴 투고자의 '도둑게' 역시 참신한 발상이 주목할 만했으나 지나치게 설명 위주의 구성이 문제였다.
심사숙고 끝에 우리는 '섬을 읽다'를 제2회 늘물섬문학상 수상작으로 낙.했다.
함께 투고한 다른 두 작품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았을뿐더러 '섬을 읽다'의 경우 섬을 '책'으로 비유해 이미지를 집중력 있게 끌고 가는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해안선을 접힌 책장으로 보거나, 해녀의 생이 해식애에 밑줄 긋는다는 묘사, 파도에 바위의 갈비뼈가 드러난다는 은유 등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4수나 되는 긴 호흡 가운데 각 수의 종장이 초, 중장을 정리하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역할을 잘 감당해 냈고 안정적인 어조를 유지하면서도 서사의 낙차는 감동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세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수상자가 '책장을 모두 덮으면/ 바다가 나를 읽는다'고 작품 마지막에 진술했듯이 앞으로도 이 세계에 보다 예민하되 따뜻한 시인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수상자의 행보를 앞으로 기대해 보기로 했다.
<심사위원=김일연, 변종태, 김남규>
▲당선 소감
정순영 시인
늘물섬문학상 당선 소식을 받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시조 공부였지만 정해진 율격과 리듬 안에 깊은 사유와 정서를 담아내는 시조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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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조를 읽고, 한 편씩 써내려가는 일이 그저 즐거웠고, 때로는 한 구절이 마음에 걸려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섬은 어머니와도 같은 아련한 그리움입니다.
수십 년 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학교에서 5년 남짓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바람이 순한 날이면 햇살에 부서지는 파도가 비취처럼 아름다웠고, 검은 구름이 내려앉아 선창의 밧줄을 거칠게 흔들어대는 날이면 바다는 사나운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거친 바다를 품고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모습은 한없이 순박하고 맑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삶에서 때 묻지 않은 인간의 원형을 보았고, 때로는 세상에 처음 내려온 선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그때의 섬과 바다는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지금도 제 가슴 한 켠에는 쉼 없이 출렁이는 바다가 살아 있습니다. 저의 시는 그 바다와 섬을 향한 오래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늘물섬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시조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늘물 고성기 시조인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수상을 더 깊이 공부하고 정진하라는 격려로, 또한 시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라는 당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늘 흐르는 물처럼 마음을 열어 읽고 쓰겠습니다. 제 마음과 시조를 더욱 맑게 가꾸며, 늘물섬문학상 수상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시조인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겠습니다.
심사숙고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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